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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

2015-05-06_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려는 독일인들의 노력을 보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려는 독일인들의 노력을 보면...]

 

전율을 느낀다. 독일정부가 쏟아내고 있는 보고서들을 보면 볼수록 무섭다.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제1차 산업혁명의 덕분으로 19세기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세기였다. 이런 흐름을 가장 뒤늦게 받아들인 나라가 독일과 일본이었다. 그렇지만 가장 튼튼한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세계를 향해 전쟁을 치를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길렀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2차로 전기혁명을 주도한 미국은 20세기 전반을 지배했고, 그 여세를 몰아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는 다시 제3차 전자혁명을 일으켜 컴퓨터의 세계를 열었다. 20세기 전체 지구덩어리를 미국이 지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변화를 가장 재빨리 따라 간 나라가 패전국 일본과 독일이었다.

 

그럼 21세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Cyber-Physical System(가상의 물리시스템)Internet of Things(사물인터넷)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혁명은 미국과 독일이 서로 각축전을 벌이면서 진행되고 있다. IT 분야는 미국이 앞서 있지만, 제조업의 스마트 팩토리 분야는 독일이 앞서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가장 빠르게 따라가고 있다. 독일은 아예 중국을 자신들이 일으키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파트너국가로 여기고 있다.

 

지금 독일에서는 엄청난 양의 연구물과 보고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제목만 훑어봐도 대강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물론 기술적인 세세한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첨단기술들을 어디에 어떻게 써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독일 정부, 기업, 연구소, 대학 등은 기본적으로 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위한 철학을 정비하고 있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이 철학적 사유가 곧 플랫폼(Plattform, platform)을 만들어내고 있다. 즉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언제, 어디서 할 것인지, 그렇게 되면 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 그 변화에 대비해서 사회의 각 분야는 어떤 것을 지금 준비해야 하는지... 등등, 대단히 세심하게 논의하고 있다.

 

그들은 이 프로젝트를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이라고 말한다. 플랫폼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토대를 의미한다. 그 토대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전문가들이 나서서 협력하고 있다. 나는 독일인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문서를 검토하면서, 삶의 플랫폼과 기술의 플랫폼이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독일 연방 경제산업부와 교육연구부, 경제계, 노동조합, 학계의 대표자들이 이끄는 제4차 산업혁명 플랫폼의 구조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 형편인가? 지난 4월 중순에 하노버에서 열린 기술박람회에 정부 공무원들, 정부출연 연구기관 인사들, 기업체와 협회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출장을 다녀왔다. 심지어 기자들도 많이 다녀갔다. 하지만 정부의 산업부와 미래부에서도 인더스트리 4.0과 관련된 보고서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마당에, 얼마전에 산업부는 앞으로 몇 년 내, 몇 조원을 투입해서, 몇 만개의 공장을 스마트 팩토리(미래형 공장)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일까?

 

공무원들이 출장을 갔다 왔으면 출장보고서라도 써서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출장 가서 구경하다 왔으면 그냥 그랬다고 써서 내면 되는 것 아닌가? 관심이 있는 국민이라면 당연히 공무원들이 쓴 보고서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한양대학교에 있을 때 미국, 인도 출장을 갔다고 오면 반드시 보고서를 제출했다. 물론 그런 규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스탠포드대학교의 하소 플라트너 인스티튜트 디자인스쿨(Hasso Plattner Institute, Design School)을 방문해서 소위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에 관한 교수학습내용을 파악해서 보고했다. 인도 출장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 등록금과 국비로 출장을 갔는데 내 출장의 목적, 내용, 결과 등을 학생들과 교육부와 국민이 상세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그 내용을 요약해서 내 블로그에도 올리곤 했다. 공무원이나 연구자들이 공금으로 출장업무를 수행했으면 그것을 보고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보고서 없는 공무출장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산하 연구기관에서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보고서가 있긴 한데, 죄다 미국, 독일, 일본 자료를 짜깁기 해놓은 것들 뿐이다. 신문기사들도 깊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자세로 제4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하는지, 진지한 보고서와 기사를 아직 보지 못했다. 이 혁명적 변화를 준비하는 플랫폼은 말할 것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