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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

협동조합(사회적 기업) 경영론

2015-05-27_협동조합(사회적 기업) 경영론

 

()마포공동체라디오(마포FM)에서 주최주관하고 서울시협동조합상담지원센터가 후원하는 협동조합(사회적 기업) 경영론 강연을 했다. 강연내용의 핵심 메시지는 간단하다. 협동조합은 민주주의(民主主義)와 공화주의(共和主義)를 실현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고, 공화주의는 모든 주인이 공공선(公共善)을 위해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적이고 공화적인 사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골치 아픈 이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란 어떤 경우에도 ""을 추구하는 이념이다. 어떤 경우에도 인권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와는 상반된다. 돈을 추구하면 인권이 무시되고, 인권을 추구하면 돈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11표 시스템과 11표 시스템 사이에는 어떤 공약점도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사상을 실현하려면 자본주의 체제를 적당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소위 경제개발을 빌미로 자본주의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어도 그것을 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는 정책을 써왔다. 그래서 이제는 온 나라가 자본주의에 중독된 상태처럼 보인다. 종교, 교육, 사법, 언론, 의료 등 절대로 부패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오래전부터 자본에 포획되었고, 이제는 포획된 상태를 넘어 아주 깊이 썩어 들어가고 있다.


 

이것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협동조합이다. 내가 협동조합을 강조하는 이유는, 다른 어떤 기업조직보다 더 원활하게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쉽지 않다. 어려서부터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관한 교육훈련을 거의 받지 못했으며, 나아가 진정으로 협력하고 합의하는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다른 애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스펙 쌓기를 지상목표로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을 눌러서 패배시켜야 자신이 살 수 있게 된, 매우 슬픈 나라가 된 것이다.

 

이렇게 경쟁적으로 살아왔기에 우리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제압하거나 때려눕혀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자본주의체제는 항상 경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승패의 패러다임에 완전히 구속되어 있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을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부익부빈익빈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세계 최고의 자살률, 노인 빈곤율, 이혼율, 세계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되는 대로 협동조합의 이념, 즉 자주적이고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사상을 가르쳐보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적이고 공화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있는가? 너무 많아서 이루 설명할 수도 없다. 서유럽의 국가들은 대부분 협동조합의 정신에 입각하여 운영된다. 그 중에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스위스다. 지난 167년간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실천함으로써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다. 스위스의 국가운영방식에 관해 설명을 들으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어떤 것인지도 이해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강의를 들은 후에 벌어지는 질의응답이다. 나는, 교육이란 질문의 퀄리티(quality)를 높이는 행위라는 어느 교육학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다음과 같은 높은 수준의 질문들이 있었다. 물론 시간이 허락된다면 더 많은 질의응답과 더 깊은 대화가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시간과 장소의 제약으로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 그래서 질의한 내용 중에서 그 핵심을 정리하여 이곳에 올린다. 아무쪼록 협동조합의 정신이 우리 사회를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실현되도록 변화시키는 데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뒤풀이를 통해 현실에서 닥친 이슈들을 논의하긴 했지만, 나 자신은 협동조합의 실무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인 원리와 철학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질문1

이런 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해외 사례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위로부터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윗사람들은 아랫사람들에게 너희들이 버티면서 열심히 교육하라, 그러면 언젠가는 변화될 것이다라는 말만 듣고 있는 형편이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좌절감을 느낀다. 서유럽처럼 모든 사람들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현하도록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교육만 한다고 해서 협동조합의 정신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아주 좋은 질문이다. 첫째, 권력을 가진 사람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조직에는 아주 쉽게 협동조합의 기본정신에 따라 운영되는 관행이 정착될 것이다. 그것이 가정이든, 기업조직이든, 정부조직이든 말이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조직은 참으로 힘들어진다. 적재적소의 인사원칙이 통용되도록 공직자를 선출할 때 유권자들이 잘 선택해야 한다. 다른 길이 없다. 공직선거에 나선 후보가 과연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이해하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왔는지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 이것은 시민의 의무다.

 

둘째, 교육훈련이 중요하다. 교육과 연대를 위해서는 기독교 모델을 응용할 수 있다. 기독교는 2천년 동안 수많은 위기에서도 살아남았다. 오늘날 인류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힘은 교육과 연대에서 온 것이다. 교회를 보라. 일요일에 예배드리고, 그것도 모자라 수요일에 또 모이고, 그것도 불안해서 금요일에 구역예배를 위해 또 모인다. 그리고는 또 다시 계절별로 유명한 강사를 모셔다가 부흥회를 연다. 그렇게 모여서 듣는 내용을 보면 매번 거의 같은 메시지다. 두뇌만이 아니라 온몸의 근육과 세포에 기독교 사상이 배어버리지 않겠는가? 협동조합도 이 모델을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말하자면, 나는,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적 도전에 대항하는 민주적이고도 공화적인 조직혁명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것은 우리 민족의 정신혁명이기도 하다.

 

셋째, 교육과 함께 연대가 중요하다. 조합원들끼리 모여서 늘 연대해야 한다. 추구해야 할 비전, 목적, 방향을 토론하기 위해 세미나를 하고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아울러 협동조합끼리 연대하여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돕는 협력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강의/강연을 해왔지만, 내 강의를 들은 수강생 중에서 가장 나이어린 수강생이다.



질문2

강의 중에 합의의 원칙을 매우 중시하셨는데, 현실에서는 합의가 어려울 때가 많다. 어느 정도의 위계질서가 있어야 합의가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조금씩 서로 양보하고 절충해서 타협을 하면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스위스의 연방정부처럼 만장일치의 합의원칙을 지키려면, 물론 이상적이긴 한데, 효율성이 매우 떨어지고 업무처리가 늦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타협과 합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좋은 질문이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실현하는 데 있어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장 기초적인 원칙이 바로 합의다. 이 합의의 원칙을 독일어로는 콜레기알프린칩(Kollegialprinzip)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principle of consensus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 엄밀히 따지면 조금 다르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가 이루어진 후에는 모든 참여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다. 여야정치인이 서로 합의문을 작성해서 발표한 후 그 다음날 서로 다른 소리를 하는 예를 수없이 봤다. 그런 것은 합의가 아니다. 서로 타협을 했기 때문이다. 강의 중에 말했듯이 타협은 서로 다른 견해의 교집합을 만들어낸 것이다.

 

합의란 참여자의 모든 견해가 새로운 대안에 완전히 담겨 있어야 한다. 합집합을 만들어내어 그것을 새로운 대안으로 창조했기 때문에, 합의안에 서명한 참여자들은 어떤 얘기를 해도 그 합의안에 부합한 얘기를 하게 된다. One Voice의 원칙이 지켜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창조적 합의안을 만드는 것이 바로 헤겔이 말한 역사발전의 법칙인 정반합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합의를 해내려면 길고도 지루한 토론을 해야 하고, 때로는 감정적 소모가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효율성도 떨어져 업무처리가 늦어질 것이다. 합의의 원칙을 지키는 대가는 엄청 커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윗사람의 일방적 지시와 명령으로 신속하고도 재빠르게 업무를 처리한다. 엄청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유럽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느려 터져서 짜증이 날 정도다.

 

그런데, 일정기간 지나고 나면, 우리보다 서유럽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일하는 시간도 우리의 반 밖에 안 되는데 말이다. 이것은 정말 신비로운 일이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 신비를 우리 민족이 터득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생산성이 높고 창조적인 성과를 많이 내는 사람과 조직의 특성은 일을 많이 하지도 않고 빠르게 하지도 않는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일의 본질에 집중한다. 무슨 말이냐? 자신이 맡은 일이 5년 후, 10년 후, 20년 후에는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계획한다. 머릿속에서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탐구하고 참여자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고 다시 분석하고 통합하여 기본 틀(framework)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플랫폼(platform)이다.

 

여기서 차이가 난다. 우리는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은 것을 열심히 만든다. 물론 당장은 써먹을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또다시 이전 것은 버리고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 휴대폰을 비교해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일단 플랫폼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고 나면 그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는 여러 모듈들을 만들어서 모듈들 간에 상호 네트워킹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업무와 기능에 따라 네트워킹이 자주 일어나는 것들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다시 생태계(ecosystem)을 형성하게 된다.

 

platform, module, network, ecosytem을 만들지 못하면 결코 생산성을 높일 수 없다. 빨리빨리 타협하고 의사결정해서 부지런히 일하면 뭔가 될 것 같지만, 이제는 그런 세상이 지나갔다.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고 토론하여 다양한 견해를 종합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 완전히 창조적인 합집합을 만들어내는 교육훈련이 필요하다. 내가 협동조합에서 교육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직에서, 특히 협동조합에서 자신의 견해가 옳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견해를 묵살하거나 억압하는 태도로는 결단코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모두 겸손해져야 한다. 나의 견해가 옳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나의 견해는 항상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옳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틀리다'라고 결론 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타인의 견해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집합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합의의 개념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거듭 반복하거니와,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하는 길은, 바로 다양한 견해가 융합되어 창조적인 합집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집단지성의 힘이다.

 



질문3

협동조합에 관심을 많이 같게 되었다. 5명 이상 모여서 협동조합을 하게 되면 지원금을 받게 되고, 협동조합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위를 점하게 하기 위한 좋은 비즈니스모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협동조합은 비즈니스모델이 아니다. 협동조합은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를 보다 인간중심적인 사회로 변혁시키기 위한 정신혁명운동이다. 자본주의보다 더 높은 이익을 내려고 협동조합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조직이 유지발전하기 위해서는 일정부분 이익이 나야 하지만, 이익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영리기업을 Profit organization, 비영리조직을 Non-profit organization, 협동조합을 Not-for-profit organization이라고 부른다.

 



질문4

합의와 타협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협동조합을 하다보면, 현실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는데 합의가 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스위스에서도 연방정부에서 합의에 의한 결정이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면 국민청원이 일어날 것이고 이는 결국 국민투표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의사에 합치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 조합원의 의사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서 그들의 의견을, 비록 소수의견일지라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구조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기구가 이사회다. 이사회는 스위스 연방정부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항상 조합원의 의사를 늘 청취하고 그들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이사회 구성이 조합원 중심이라야 한다. 조합원 중심의 이사회를 구성하려면 영국의 BBC Trust의 구성원리를 응용하여 지역별, 성별, 연령별 대표자들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조합원의 의사에 합치하지 않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둘째.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이다. 이사회의 회의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사실 이사회 회의장면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하는 것이 가장 좋다. 누가 어떤 내용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모든 조합원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문서화하여 아카이브로 남겨두어 훗날의 역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생중계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면 녹화해서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어쨌거나 이사회에서 서로 합의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권한이 있는 사람의 의도대로 명령을 내려서 실행에 옮기는 방법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결정을 미루는 방법

 

첫 번째의 명령에 따라 실행하는 방법은 우선 위계질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이 방법이 활용되면 그 다음부터는 협동조합의 정신은 사라지고 지배와 명령에 의한 피라미드형 계급구조로 삽시간에 전락한다. 우리나라의 정치형태가 이렇다. 나는 이런 방식을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협동조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번 지배와 명령의 사건이 벌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일이 명령시스템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의존하게 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은 스스로 자율적인 사고를 하지 않게 된다.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부속품처럼 느끼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협동조합은 사회적으로는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는, 돈벌이에 연연하는 영리기업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면 두 번째의 합의할 때까지 미루는 것은 어떤가? 어떤 경우에도 합의에 의해 결정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령에 따라 실행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합의를 하려면 어떻게든 창조적 합집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 말이다. 실행할 시기를 놓쳐 큰 손해가 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손해를 감수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이유로 명령에 의한 결정이 이루어지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합의를 어렵게 하는 여러 대안들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 창조적 합집합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구성원들은 정기적, 비정기적 세미나와 워크숍을 개최해야 한다. 여기서 조직의 비전, 목적, 방향을 공유하고 혁신적인 대안들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모임을 갖는다. 여기에는 첨예한 이슈들을 해결하는 여러 방법론들이 개발되어 있고 실제로 이것을 활용한다. 이것이 스위스뿐만 아니라 독일 산업교육과 훈련과정의 하이라이트다. 스위스를 비롯한 게르만 모형의 경쟁력은 바로 이런 혁신적인 교육훈련을 통해서 나온다. 내가 협동조합에서 끊임없이 교육훈련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협동조합은 어떤 경우에도 투명해야 한다. 협동조합 운영진은 사생활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서유럽은 협동조합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고위직일수록 사생활이 없다. 개인소득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정생활까지 완전히 유리항아리에 있는 것처럼 투명하게 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사생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자리에 가지 않으면 된다. 누가 강제하는 사람도 없다. 어디서 누구와 밥을 먹었는지 일거수일투족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그렇게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사람의 사생활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다가 약간의 의심이 들면 그때부터는 거의 완벽하게 털린다. 그러니까 허튼 수작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강의 중에 잠시 언급했듯이, 우리의 최종 목표는 스칸디나비아 모델 수준으로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그렇게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니 게르만 모델 수준으로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스칸디나비아 모델이든 게르만 모델이든 그들이 투명성을 확보하게 된 것은 그냥 자연스럽게 된 것이 아니다. "투명하게 공개하기를 두려워하는 자가 누구인지 공개하라"는 요구를 국민이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시민단체의 역할이 컸다. 협동조합도 이렇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스스로 앞장 서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 개인비즈니스가 아니고, 적어도 협동조합이나 시민단체, 비영리기관이나 정부기관에 일단 들어선 사람은 사생활을 포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병역기피, 위장전입, 논문표절, 공금유용 같은 불법적인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때문이다. 개인비즈니스라 하더라도 규모가 있는 회사의 경우는 시스템적으로 모든 것이 공개되기 때문에 개인이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은 낮다. 모든 자료가 공개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합의를 통해 합치의 원칙, 즉 국민의 의사에 합치하도록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것을 위해 연방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니까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의사를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하여 국민청원이 일어나게 되면, 설사 연방정부가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국민투표에 붙이는 수밖에 없다. 이렇듯 연방정부는 국민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지를 면밀히 보살피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통계를 찾아보니까, 1891년부터 20152월까지 약 124년 간 국민청원을 개시한 건수가 432개인데(평균적으로 매년 대략 3.5개의 국민청원이 일어남), 실제로 공식청원으로 인정된 것은 195(매년 약 1.6)이다. 이중에서 연방의회 또는 국민투표에 의해 가결된 것이 22(매년 대략 0.18). 이렇게 124년의 역사를 볼 때, 국민청원이 최종적으로 가결되어 성공할 확률은 대략 5%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스위스 정부는, 아주 까다로운 의사결정이라 하더라도 사전에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여 합의안을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국민은 자신들의 의사에 거의 합치하도록 정부를 운영해왔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최종 목표는 스칸디나비아 모델 수준으로 가는 것이지만, 우선은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적어도 스위스 수준에서 조합이 운영될 수 있도록 이사회를 격려하되 때때로 감시도 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이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사회의 이사 또는 사외이사로 활동했던 나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봐도 우리나라에서 활용되고 있는 미국식 이사회 제도는 정말이지 엉망이고 개판이다.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시간 나는 대로, 물론 언제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이사회 제도의 개혁(미국식 vs 유럽식)에 대해 정리해서 발표하고자 한다. 벼르고 있는데 아직 못하고 있다.


 

질문5

수평구조에서 서로 의견이 다를수록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화와 토론을 기피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자신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다른 의견을 포용하고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정신적 토대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합의의 정신을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실용적인 제안을 하고 싶다. 자신의 견해를 주장할 때, "내가 틀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또는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다. 내 주장이 옳고 상대방의 주장은 틀렸다는 식으로 처음부터 윽박지르면서 몰고 가면 대화와 토론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회과학의 대상이 되는 이 세상에는 맞고 틀린 것이 없다. 어떤 사실이나 진실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냥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서로 합의한다는 의미는 각 개인의 다양하지만 주관적이고도 일방적인 관점들을 360도의 관점과 구글맵의 줌인-줌아웃(zoom in- zoom out)과 같은 관점을 포괄하는, 가능한 한 모든 관점에서 합집합의 창조적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조직운영의 토대인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조직운영의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그런 조직과 국가는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수평구조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구조이기 때문에, 피라미드형 계층구조의 마인드셋(mind-set)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해결책은 역시 교육이다. 학교에서부터 대화하고 토론하는 방법을 제대로 익혀서 수직적 마인드셋(pyramidal mind-set)이 수평적 마인드셋(horizontal mind-set)으로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시험점수로 서로 경쟁하도록 가르치는 현재의 교육환경으로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 우리 산업계는 스위스를 포함한 게르만 모형보다 훨씬 더 많은, 그리고 훨씬 더 강력한 교육훈련을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