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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국내여행 이야기

2015-06-08-10_광주와 담양 여행 사진 2015-06-08~10_광주와 담양 여행 사진 담양, 메카세쿼이아의 길 담양, 소쇄원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광주, 금남로와 예술의 거리, 구 전남도청 더보기
전북고창에 갑니다... 2박3일 일정이라 묵을 곳과 볼만한 곳 추천 바랍니다 [전북고창에 갑니다... 2박3일 일정이라 묵을 곳과 볼만한 곳 추천 바랍니다.] 작년에 출간한 책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21세기북스 2014)을 읽으신 선생님들이 저를 초청해주셨습니다.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의 젊은 시절 이력을 비교적 소상히 밝혔습니다. 강원도 시골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삼시세끼 먹을 것이 없을 정도여서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죠. 어찌어찌하여 고등학교는 마쳤지만, 대학을 갈 형편이 못되어 당시 학비가 전혀 들지 않는 2년제 초급대학인 춘천교육대학을 간신히 졸업했습니다. 교대졸업생들의 의무복무 기간인 5년 동안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했습니다. 20대 초반의 얘깁니다. 낮에는 교사를 하면서 밤에는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녔습니다. 덕분에 주.. 더보기
2015-01-09~10_통영에서 형님과 둘이서 한참 동안 “죽으면 늙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금요일(1월9일) 오후 통영항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가방을 열었는데, 카메라는 없고 렌즈만 두 개... 카메라가 도대체 어디를 갔느냐,.. 통영에 도착할 때까지 카메라를 집에 놓고 왔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카메라 없이 이틀을 보내야 했다. (카메라 없이 여행을 하는데... 영 허전하고... 영 익숙하지 않다.) 통영은 처음이다. 항구, 앞바다에 뜬 크고 작은 섬들, 미륵도, 케이블카, 통영대교, 동피랑 벽화마을, 이순신공원... 누가 통영을 한국의 나폴리라고 했나? 1990년 여름이던가, 내가 처음으로 이탈리아 나폴리에 갔을 때, 그 더러움과 악취를 견뎌야 했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청소부들이 파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더보기
이상원 화백의 세계 2015-01-17(토)_ 오늘 춘천을 다녀왔다.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이상원(李相元) 미술관을 둘러보는 행운을 얻었다. 그가 천재적인 화가였다는 사실을 미술관에 들어서면서 알았다. 그는 미술대학 근처도 가본 적이 없다. 먹고 살기 위해 극장 간판을 그렸고 미군 초상화를 그려서 돈을 벌었다. 1935년 춘천 유포리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상업적인 그림을 그리다가 7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사상이 담긴 작품을 그리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화가 이상원에 대한 기사 http://topclass.chosun.com/board/view.asp?catecode=J&tnu=201501100008 더보기
2014-10-18_강원도 여행 3 오늘은, 2014-10-18(토), 오색약수터 주전골을 통해 한계령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기로 했다. 늘 그렇지만, 강원도 산하는 정말 아름답다. 어디를 가도 그렇다. 그러니 사람들이 단풍철이 되면 미어터진다. 더보기
2014-10-17_강원도 여행 2 강원도는 내 고향이다. 원주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5학년부터 춘천에서 자랐다. 33년 전, 그러니까 1981년 9월부터 10개월간 한국은행 강릉지점에서 신입행원으로 일했다. 강원도의 주요 도시인 춘천, 원주, 강릉에서 살아본 진짜 강원도 촌놈이다. 유학시절 책상머리에 앉아서 외로움을 달래는 길은 강원도의 산하를 상상하는 것이었다. 사람 키의 스무 배쯤 되는 미루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섬강 가에서 멱 감는 모습, 저녁에는 동네 굴뚝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퍼지는 모습... 그러다가도 거의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이탈리아 북부, 그 중에서도 토스카나지방을 여행했다. 강원도 산하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인지 그곳에 가면 마음에 약간의 안식을 얻는 것 같았다. 능선의 명암 차이를 멀리서부터 가까이 다가오.. 더보기
2014-10-16_강원도 여행 1 평생 교사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직한 형님과 함께 강원도 2박3일간의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는 많은 얘기를 했다. 사기꾼이 판을 치는 것 보니 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점, 설악산을 보면서 개성관광을 했었다는 점, 아직은 금강산을 아직 보지 못했다는 점 등등... 우리는 남북관계를 단절시킨 멍청한 정부를 질타했다. (선친은 북한 의주가 고향인데...) 생각이 없는 정부지도자들 때문에 백성들이 고생하고 있다, 설악산 단풍이 절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닌 것 같다(한계령 고지대의 그런대로 단풍이 들었다), 이제는 손주들 보면서 건강을 챙긴다, 애기들을 보면 짜릿한 기쁨을 느낀다, 손자자랑하려면 만원 내고 손자사진 보여주려면 5만원 내야 한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고... 미시령 터널을 통해 설악산의 .. 더보기
1960년대의 시골 고향 오랜만에 시골 고향에 다녀왔다. 선친 묘소가 아직 그곳에 있고... 사진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그러니까 60년대 중반까지 박정희 장군의 혁명공약을 외우면서 학교를 다녔던 고향의 모습이다. 민생고를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 혁명공약을... 50여년이 지났지만 시골의 민생고는 여전히 어렵다. 우리집은 고향을 버리고 어머니의 교육열에 의지해서 무작정 춘천으로 이사를 했다. 자식들이 그나마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시골에 머물던 외가의 친척들은 여전히 시골에서 그렇게 산다. 형님과의 강원도 여행을 통해 내가 태어나게 된 출생의 비밀도 알게 되었다. 사진에 나오는 집은 60년대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다. 우리가 살던 집도 아주 오래전에 완전히 없어졌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