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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이야기

듣는 문화에서 비전이 생긴다_애경그룹

오늘날 유대인 문제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적의와 폭압적 공격은 아직까지도 중동을 화약고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흩어진 유대인들이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려던 시온주의(Zionism)는 민족해방운동으로 전개되다가 때로는 전쟁도 불사합니다. 그들의 행태를 세계인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전세계 인구의 0.2%밖에 안 되는 적은 수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세계 경제와 금융, 국제정치, 문화예술, 과학기술 등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많은 연구결과와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유대인들이 남긴 탁월한 업적은 보는 문화가 아닌 듣는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합니다. 시각적인 자극은 대개 청각적인 것보다 강렬해서 인간의 뇌리에 명확히 각인되기 때문에 다른 상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습니다. 청각적인 자극은 시각에 비해 덜 자극적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창조적 상상이 가능합니다. 비전(vision)은 이러한 상상력의 결과이며 이 상상력이 어느 정도로 강렬한가에 의해 비전달성의 의지가 작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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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것>은 창조적으로 상상하게 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상상한 것을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훈련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는 것>보다는 <듣는 것>이 더 큰 믿음을 일으킵니다. <보는 것>은 사실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facts)은 믿음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묘사 또는 설명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듣는 것>은 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묘사와 설명의 수준을 넘어 믿음으로 나가게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했습니다. 보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믿을 수 있고, 듣는 것은 사실여부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을 갖게 합니다. 믿음은 듣고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몸으로 체득하게 합니다. 온몸의 세포가 기억하고 그것을 확고하게 체득한 믿음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이렇게 일단 선순환의 고리에 들어서게 되면, 행복해지려고 마음 먹은 사람은 더욱 행복해지게 되고, 불행해지려고 마음 먹은 사람은 더욱 불행해지게 됩니다. 골프스윙을 연습할 때도 코치의 말을 듣고 반복하여 연습하면 그것이 몸의 근육에 체득됨으로써 안정적인 스윙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안정적인 스윙의 맛을 몸이 익히게 되면, 골프스윙이 아주 재미있어집니다. 그러면 자꾸 골프를 치게 되고, 더욱 좋은 성적을 내게 됩니다. 재미있으니까 더 하게 되고 점점 더 잘 치게 됩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에서 이것을 아주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가진 사람은 더 받아서 더욱 풍성해질 것이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이것을 자신의 책 『아웃라이어』(김영사 2009)에서 마태복음 효과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글래드웰이 유대인과 듣는 문화를 사례로 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마태복음 효과가 유대인의 <듣는 문화>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유대인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보고 이해하는 태도>가 아니라 <듣고 외우는 태도>입니다. 외운다는 것은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임원이 되려는 애경그룹의 관리자들에게 <보는 문화>가 아니라 <듣는 문화>를 통해 믿음이 생기며, 이 믿음은 인간의 삶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임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이런 믿음을 통해 조직의 비전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믿음이 사라지면 공동체적인 삶의 기초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한 창조적 상상은 반복적인 연습과 훈련을 통해 탁월함에 이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