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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영국여행 이야기

영국여행 이야기(20)_런던에서 온 편지

내가 요즘 새로운 일에 집중하느라 블로그에 신경을 쓸 새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 블로그의 새로운 포스팅을 기다리는 분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는데, 마침 런던에서 일하고 있는 딸이 편지를 보내왔네요.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지켜 본 바로는 딸과 아들이 매우 다른 성격적 특성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인문학적 소양과 감수성이 풍부합니다. 유학 중에 자신이 쓴 에세이를 가끔 보내옵니다. 나는 그 에세이를 읽고 감동하곤 했습니다. 영어로 쓴 문장이 그렇게 유려할 수가 없었어요. 글에서 영혼의 울림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딸은 문장력보다는 수학적 재능과 비즈니스 감각이 더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의 전공도 경영학(business)이었죠. 졸업한 후에도 런던에 있는 투자은행(Credit Suisse)의 파생상품을 다루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로스쿨(law school)을 가겠다는 겁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모든 금융상품의 거래에는 반드시 변호사들의 사전 허락이 필요하답니다. 그들이 거래조건을 일일이 따져서 법률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판단이 서야 거래가 성사되죠. 그래서 딸 아이 주변에는 여러 변호사들이 판을 치고 있고, 그 틈바구니에서 일하다 보니 변호사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별 것도 아닌 일을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자들이 소위 곤조를 부리는 사건도 경험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아니꼽고 더러운 꼴을 몇 차례 겪었겠죠. 그래서 변호사 자격을 따야겠다고 맘먹은 모양입니다. 지난 여름 휴가 때 함께 여행하면서 몇 군데 로스쿨에 합격을 해 놓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해 고민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덧, 학교를 결정하고 회사와 협상해서 온갖 지원을 받아내 로스쿨에 등록을 한 모양입니다.

 

주중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에 다니는 코스여서 곱절은 힘든 과정이라고 합니다. 좋은 남자 만나서 빨리 시집가는 게 효도하는 거라는 엄마의 강조는 뒷전으로 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향해 묵묵히 전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딸의 심경을 담은 편지를 보내 왔길래 이 블로그를 사랑하는 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딸이 써 보낸 그대로 옮겼습니다.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희망과 성취를 함께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엄마 그리고 아빠 그리고 한결,

 

예전에 친구들이랑 돌아가면서 쓰는 다이어리가 유행이었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더라고요.

 

...
좋아하는 운동: 수영
좋아하는 동물:
좋아하는 연예인: 송승헌 오라버니
장래희망: 프로골퍼, 모델 아니면 .....
...

 

이게 언제 쓴 글인지 아세요? 세상에! 깜짝 놀랐어요. 초등학교랑 중학교 다닐 때 뭘 안다고 국제변호사라고 썼을까? 소름이 돋아오면서, 역시 어딘가에 적어놓으면 꿈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가 싶어요. (적어도 지금은 꿈을 이루기 위한 현재진행형이지만). 

 

프로골퍼나 모델, 국제변호사는 너무나 다른 분야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 아빠가 했던 말이 내 장래희망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아빠가 아마도 그 땐 골프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인 것 같아요. 아빠는 내가 골프채를 휘두르면 무조건 잘한다고 했고, 스윙이 시원하다고 하면서 칭찬을 해 주었어요. 나는 다리가 길어서 모델 해야 된다고 했던 말도 정말로 진지하게 들었나 봐요 ㅋㅋ. 모델로 빠지지 않길 천만다행이지요. 남들한테 폐 끼치는 일은 적어도 하지 말아야 하니까 ㅎㅎ.

 

내 기억에는, 엄마 아빠는 내가 남의 일에 참견 잘한다고 해서 변호사해야 된다고 했던 것 같아요어렸을 때 남의 비즈니스에 참견하는 것을 야단치지 않고, 변호사가 될 아이라고 칭찬해 줘서 여기까지 왔나 싶어요. ^^  

 

지금 생각해보니 2009 9 26일은 내 인생을 길게 놓고 볼 때 의미 있는 하루가 될 것 같아요. 로스쿨에 등록하고 처음 등교했거든요. 학교에서 줄 책들이 많을 것을 대비해서 비행기 기내용 가방을 가져갔어요.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로스쿨에 진학하게 되었는지도 참 신기하고, 내가 힘겹게 진로를 위해 싸우지 않아도 이런 기회가 내 앞에 놓이게 되는지그것도 회사에서 휴가와 학비를 받아가면서 말이예요. 참 감사할 일이죠.

 

공부하다 보면 직장에서는 정말 찬밥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데,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궂은 일 해가면서 어쩌면 회사에서 내 능력이 이용 당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젠 생각을 고쳐먹고, 마음을 활짝 열어 모든 사람들의 욕과 비난을 다 짊어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양인으로서, 여자로서그리고 영어가 외국어인 한국사람으로서 회사에서 인정받고 출세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소수와 약한 자의 위치에 있는 게 어떤 건지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는 단지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보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회, 편견 없이 자기의 능력을 맘껏 개발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나의 욕심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삶은 정말 멋질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미래는 교육밖에 없고,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해외 유학이라는 흔치 않은 기회가 주어진 나에게 사명이 무엇인지 요새 생각해보게 됐어요. 아빠 말대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에 절대 포기하지 않고, 힘내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할꺼예요. 사실 오늘도 강의 듣고, 읽을 법학 서적이 쌓여있지만, 이 글을 쓰는 나는 불끈불끈 힘이 나요. 나는 돈보다도 정말 나에게 주어진 능력 (그게 뭐가 됐든)을 최대한 발휘해서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꺼예요.

 

아빠가 블로그를 잠시 쉬는 사이 박원순 변호사님의 블로그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자기를 social designer라고 칭하며 희망이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느꼈어요. 정부기관이 개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소식을 듣고, 사실 우리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안타까웠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변호사님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닌가 싶던데요. 오히려 인지도가 더 높아지는 결과로 나타났으니까. 사실 박원순 변호사님의 글을 읽다가, 자기가 스크랩한 것을 모아두면, 나중에 가서 의미 있는 글들을 많이 발견한다고 해서 나도 자료더미 속에 있던 수첩을 하나하나 꺼내서 만지작만지작 거리다 나온 게 초중 때 장래희망이 적힌 글이었어요. ㅋㅋ

 

특히 법학 공부하면서 느끼는 건데, 법학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평등한 사회, 정의가 살아있는 걸 보고 싶어하는 애들이 많이 온 것 같더라고요. 로스쿨 첫날은 좀 외로웠어요. 줄 서서 수업 등록하고, 책 받고,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무하고도 얘기도 안하고, 안티 쏘샬마냥 헤드폰 끼고 음악만 듣고 있었어요. 하지만 첫 수업 시간에 인상이 확 바뀌었어요. 학교의 튜터가 매우 친절했거든요. 더구나 다양한 사람들이 수업을 듣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파트타임이어서 그런지 주위에 있는 친구들 역시 재미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내 앞에 있었던 애는 KPMG라는 회계법인에 다니는 23살 정도 된 남자애인데, 왜 법을 공부하는지는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만 집안 내력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고백하더라고요. 아빠가 변호사고 엄마가 판사래요. 내 옆에 앉았던 애는 아무런 준비도 해오지 않고 수업 등록도 못했지만 블룸버그에 다니는 해맑은 친구였어요. 제약회사 다니는 사람, 현직교사인 사람, 법학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는데도 영국 변호사로 인정되지 않아 다시 GDL을 하는 사람, 러시아 한인 3, 40살도 넘은 외국인 할아버지까지.... 배경이 가지각색이었어요. 이들 틈에서 공부하다 보면 정말 재미있는 일이 많이 벌어질 것 같아요.

 

앞으로의 수업이 기대돼요. 2년만 성실하게 코스 밟으면 나도 나름 Legal Mind를 갖게 되는 거 아니겠어요. 물론 이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수단으로 쓰여지겠지만.... 지금처럼 첫 마음을 가지고 2년 동안 열심히 하면 되겠지요.

 

첫 마음 하니 갑자기 생각나는 시가 있어요.

 

 

첫 마음 -정채봉-

 

1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
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 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행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글은 좀 횡설수설 했지만 그래도 요점은 뭔지 알겠죠? 엄마 아빠, 그리고 한결, 알라뷰 ^^


 

딸 아이에게서 받은 이 편지를 읽고, 단 두 줄의 답장을 보냈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