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영국여행 이야기

영국여행 이야기(21)_수산시장 Billingsgate Market

물건을 사는 행태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아내는 물건을 살 때,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고르고 또 고릅니다. 백화점엘 가면 층마다 진열된 상품을 보면서, 마치 의사가 환자를 회진하듯 돌아봅니다. 그리고는 마음에 드는 것들을 천천히 고르기 시작합니다. 들었다 놓기를 여러 번 반복합니다. 그리고는 점원에게 다른 데 가서 보고 오겠다며 골라 놓은 물건을 내려놓고 나갑니다. 다른 점포로 가서 또다시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특히나 식구들의 옷을 살 때는 이런 행태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보니, 구매의 질적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나는 아내와는 정반대의 구매행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필요한 물건이면 진열대에서 그냥 집어옵니다. 대개의 경우 비교하거나 내용물을 잘 확인하지도 않습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 물건만 사면 되지 이곳 저곳 다니면서 가격을 물어보거나 물건내용을 조사하는 일은 잘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를 따라 시장에 가는 것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가격을 흥정하는 일도 잘 못해서 대개 부르는 대로 주고 삽니다. 판매원들이 나 같은 사람만 상대한다면 아주 편하겠지요.

 

그래서 아내는 나의 물건 사는 방식을 매우 못마땅해 합니다. 필요한 물건을 집어 들면 그것을 사버리지, 다른 것과 비교하거나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을 뒤지면서 잘 샀는지 못 샀는지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싸게 사는 경우가 많죠. 아내는 나의 이런 습관을 늘 불안해 합니다. 바가지 쓰기 십상이니까요. 내가 입는 옷이나 넥타이 등 일체를 아내가 삽니다. 내가 산 것은 거의 없죠. 나는 정말 물건 사는 데는 재주가 없는 모양입니다.

 

아내가 서너 시간씩 아이쇼핑을 하고, 물건을 수십 가지나 들었다 놓고, 그러다가는 결국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백화점을 나서는 모습을 보고 나는 놀라곤 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어느 심리학자의 말을 듣고부터 나는 아내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 바로 아이쇼핑이라는 것이죠
. 아내는 상품의 구매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과의 조우를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가 물건을 구입하지 않은 것은 나중에 다시 쇼핑하기 위한 명분을 남겨 두기 위해서였습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쇼핑이 끝난 후 계산대 앞에 서는 것이라는 겁니다. 돈의 지출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과의 즐거운 조우가 종말을 고한다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 딸이 아내와 함께 나를 끌고 수산시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나는 잔뜩 겁을 먹은 채 카메라를 메고 따라갔습니다.


이른 아침에 많은 사람들이 수산시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시장에는 언제나 사람 사는 활기가 느껴지죠.


수산시장은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컸습니다. 이름 모를 해산물과 생선들이 즐비했습니다.



딸은 드디어 먹이감을 구한 모양입니다. 흥정을 하더니 최종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큰 수산시장을 두 바퀴 돌고 나서야 우리는 먹을 것을 결정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딸은 아내와 달랐습니다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 아이쇼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살 물건들을 정하고 가격을 흥정해서 돈을 지불했습니다. 휴~


굴, 왕새우, 연어 등 푸짐한 먹거리를 들고 와서는 아파트 전체에 냄새를 풍기면서 요리를 했습니다. 런던에서 이렇게 맛있게 아침을 먹어보기는 처음입니다. 런던에 며칠씩 묵으시는 분들은 카나리 워프에 있는 빌링스게이트 마켓에서 싱싱한 생선을 사서 조리해 보시는 것도 추억이 될 것입니다. 정말 강추입니다. 그런데, 그 큰 수산시장을 두 바퀴나 돌 필요는 없습니다. 한 바퀴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