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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영국여행 이야기

영국청년의 프로포즈를 보면서... 문화의 차이


 

지난 주, 그러니까 2014.09.19 갑자기 런던에서 일하는 딸이 파리행 비행기칸에서 카톡문자를 보내왔다... 남자친구가 딸이 일하는 회사의 상사와 동료들에게 비밀리 휴가 처리해 달라고 부탁해 놓고는 여행준비를 해왔단다...

 

동갑내기 영국청년으로부터 3년 전 사귀기로 한 바로 그 장소에서 프로포즈를 받은 모양이다. 함께 다니던 로스쿨에서 만나 사귀어 오던 남자친구다. 프랑스인 사진사를 고용해서 프로포즈하는 모든 과정을 마치 파파라치처럼 몰래 찍었던 모양이다. 그 사진사가 며칠 후에 생생한 장면을 보내왔단다. 그 바람에 더욱 감격한 모양이다. 서울로 보내온 사진만 보더라도 부러운 장면이 한 둘이 아니다. 파리의 낭만적인 거리에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세느강변에서..., 거리의 사람들이 다들 쳐다보는데서 한쪽 무릎을 꿇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반지를 바치는, "Will you marry me?"라고 하면 "Yes. I will."을 외치면서 끌어안고 키스하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들 말이다....... 파리 시내에서 난리부르스를 추고 쌩쇼를 한 모양이다... 묵은 호텔방 화장실이 우리 집 거실보다 더 크다나 어쨌다나... 어쨌든 너무나 감동적인 퍼포먼스가 있었단다. 동방예의지국의 남자들은 손이 오글거려서 도저히 할 수 없는 퍼포먼스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나이는 결혼할 때가 꽉 차고도 넘쳤는데, 부모의 마음이라는 게 시집을 못가면 어떻게 하나 속으로 걱정했더랬다... 그 동안 사귀어 보니 이제는 서로 결혼해도 되겠다고 결심을 한 모양이다...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성질 맞추면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문화는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끼리 결혼하더라도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는 것은 둘만의 성격차이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살아온 문화적 차이를 결코 극복하지 못한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문화를 무시할 수 없다... 다름을 억지로 맞추면서 사는 것은 고통이다. 다름이 고통스러울 때 빨리 헤어지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다름을 사랑과 배려로 포용하고 그것을 새로운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그 다름은 창조의 힘이 된다.

 

나는 딸이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그래서 염려하는 것이다. 아무리 영국에서 오래 살았다 해도 기본적인 문화적 속성의 다름은 어쩔 수가 없다... 우선 결혼하는 풍습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개인주의적인 영국문화에서는 두 당사자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고, 그래서 남자가 먼저 여자에게 프로포즈라는 세레모니를 한 후에 양쪽 집안에 결혼을 통보하는 형식인 것이다. 말하자면 당사자들끼리 정한 약혼(engagement) 이전에 결혼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 따위의 얘기는 결코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어떠어떠한 친구를 사귀고 있다는 얘기는 할 수 있겠지만... 프로포즈로 이루어지는 약혼의 과정은 철저히 당사자들의 몫이다. 당사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 밖의 인간들은 그들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조연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싸움의 룰이 완전히 다르다. 결혼하려는 두 당사자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양쪽 집안의 흔쾌한 허락이 없이 하는 결혼은 조금 곤란해진다. 아니 당사자들이 아주 불편해질 수 있다. 시집과 친정 사이, 처갓집과 친가 사이... 이 관계, 정말 만만한 얘기가 아니다. 예물뿐만 아니라 혼사에 관한 모든 절차와 의례를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어머니 될 사람은 며느리 될 사람에게 시집올 때 무엇무엇을 예물로 준비해 가지고 와야 한다고 명부를 적어서 보내기도 한다. 나는 주위에서 이런 몰상식한 부모들을 수없이 봐왔다. 멀쩡한 대학을 나온 지성인 그룹에 속한 인간들이 그렇게 한다.

 



 

우리나라 관혼상제를 그동안 겪으면서 나의 느낌은 점차 이렇게 굳어지고 있다.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구조의 문화적 표현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가 그렇고,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렇다. 명절을 쇠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 또한 그렇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문화다. 나아가 돈 봉투가 오가는 모습을 보면 전통적인 상부상조가 아니라 체면치례와 부패구조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부패란 강자가 약자를 뜯어먹는 행태를 말한다.

 




한국에서의 결혼은 집안 대 집안의 비공식적인 싸움이고, 영국에서는 당사자들의 공식적인 결합일 뿐이다. 딸은 이 문화적 차이를 그 동안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대견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ps. 참고로 여기 올린 사진은 2012년 여름 휴가 중 파리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