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1921-1968)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
내가 좋아하는 시인 김수영 전집을 꺼내 시를 읽었습니다. 시(詩)라도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나 봅니다. 1965년 쓴 시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큰 일에는 분개하지 못하다가, 작은 일에는 옹졸하게 반응하는 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니 이게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저 왕궁의 음탕에는 침묵하면서 막말 몇마디에 그렇게 크게 반응하는 옹졸함을 발견하고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데는 그래서 시인의 감성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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