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직 이야기

인간이란 무엇인가(5)_존재와 실존

지난 이야기

          인간이란 무엇인가(1)_인간을 보는 눈
          인간이란 무엇인가(2)_경영학의 인간관 문제
          인간이란 무엇인가(3)_이데올로기의 문제
          인간이란 무엇인가(4)_이데올로기와 이성적 판단능력


특정한 지배적 관념이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현실에서, 인간에 대한 지배적 관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 마디로 인간을 뭐로 볼 것인가에 관한 얘기입니다. 서양철학은 사물의 본질(essence)을 밝히는 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인간의 본질에 관해서도 탐구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부유했지만 우울하게 일생을 보냈던 덴마크의 철학자 죄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는 인간에 대한 객관적 본질보다는 주관적 존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본질이란 실체나 대상을 구성하는 속성과 그 인과관계 또는 존재목적을 의미하기 때문에, 여타 사물에 대해서는 그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의미가 있지만, 인간에게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구성요소와 그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속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을 확보해주는 궁극적 목적을 찾는 것도 철학적 사유로는 밝힐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essence)에 대한 질문을 인간의 존재(existence)에 대한 질문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독일어의 Existenz, 영어의 existence를 일본사람들은 실존(實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실제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실존과 존재의 미세한 차이,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존재는 나 자신 밖에 있는 모든 대상을 말합니다. 그 대상이란 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입니다. 여기에는 존재의 본질을 묻는 본질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본질적 사고의 특징은 요소환원주의적입니다. 어떤 것의 객관적 속성을 분석하려면, 그 대상을 분해하여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요소를 찾아내고 그 요소의 성질과 작용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과학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분석적 사고력은 필수입니다.

 

과학자들이 우주탄생의 비밀과 그 운행원리를 찾기 위해 물질은 원자, 원자핵, 전자, 쿼크 등의 소립자로 쪼개서 분석합니다. 그리고 그들간의 상호작용원리를 찾으려고 합니다. 본질(essence)을 찾아내기 위해서입니다. 본질을 찾아내는 행위는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고 매우 중요합니다. 국가의 본질, 조직의 본질, 직무의 본질, 노동의 본질 등 일상에서 접하는 수많은 개념과 사물들의 본질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서 말한 이데올로기 홍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성의 날을 날카롭게 세워야 하고, 사물의 본질을 파헤치는 과학적 사고를 연마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이러한 본질적 사고가 인간 자신에게 적용되었을 때 어떻게 될까요? 인간의 본질은 아마도 업 쿼크(up quark)와 다운 쿼크(down quark) 알갱이들의 조합으로 밝혀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배우자도 쿼크량을 조사해서 최적의 쿼크 프로파일 중에서 고르게 될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쿼크 알갱이들을 조절함으로써 인간의 희로애락을 통제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천재로 불리면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차드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 교수의 다음과 같은 고백을 나는 지지합니다.

 

지금의 우리는 그저 확률을 계산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사실 지금이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이것은 아마도 영원히 걷어낼 수 없는 물리학의 굴레인 것 같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인간의 지적 능력에 그어진 한계가 아니라, 자연 자체에 원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리차드 파인만,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승산 2003, 234~235)


 

그렇습니다. 나에게는 인간의 본질을 알 수 없다고 겸손하게 말한 철학자들이 솔직해 보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과학적인 요소들이 있겠지만, 어떤 목적을 위해 그 요소들이 결합하여 인간이 탄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인간에게 실존적 사고가 필요했습니다.

 

실존적 사고는 총체성(wholeness)과 전일성(oneness)을 중시합니다. 우리는 매일 무슨 밥을 먹고 어떤 치약과 칫솔로 이를 닦고, 어떤 친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하며, 무엇 때문에 상사와 갈등하는지를 마음으로 직접 체험하면서, 그 각각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반성해 봅니다. 그 반성이 자신의 삶에 피드백(feedback) 되고 다시 피드퍼워드(feedforward)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행동을 수정합니다. 물론 이런 사고과정은 본질적 사고에 의하면, 뇌세포의 전기작용 또는 화학작용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 펜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펜에서 잉크가 쏟아져 나와 종이 위를 특정한 형태로 적시고 있습니다. 이 글쓰기 작업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은 온 우주의 양전하를 띤 전자알갱이 수보다 더 많습니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난 후의 느낌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우주 전체에 있는 양전하를 띤 전자알갱이가 1080정도 된다면 한 사람의 뇌세포에서 시냅스전달을 위한 연결망을 구성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1,000,000정도라고 합니다. 인간의 뇌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간의 삶의 의미와 가치는 요소환원적인 본질적 사고로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실존적 사고를 통해 지금 여기 살아있음의 의미를 확인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자기자신이 선택합니다. 매 순간 자신이 선택한 의미를 담은 정보와 에너지가 내 몸에서 우주로 발산되어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실존적 사고는 자기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계하는 모든 대상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습니다. 이것이 분석적 사고력과 더불어 실존적 사고력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