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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이야기

인간이란 무엇인가(2)_경영학의 인간관 문제

지난 이야기

          인간이란 무엇인가(1)_인간을 보는 눈


경영학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인간관에 관한 사상사적 흐름 속에서 성립된 학문입니다. 경영이란 본질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인간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경영자나 경영학자들은 사람을 기계론적 인간관에 근거하여 보았습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테일러리즘(Taylorism)이었습니다. 테일러(Frederick W. Taylor, 1856~1915)는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생각했습니다. 노동자의 근육을 기계장치와 가장 잘 조화시킬 수 있도록 동작과 시간을 과학적으로 연구해서 훈련시켰습니다. 그 결과 생산성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그것이 당시 노동자에게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테일러 자신도 과학적인 관리방식이야말로 노동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복음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생산성을 높여서 임금을 더 지불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과학적이라는 말은 뉴턴이 우주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믿음입니다. 경영에서 모든 것을 계량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나오겠지만, 기왕 말이 나왔으니 계량화의 문제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계량화는 사물의 탈가치화 현상을 가져옵니다. 예를 들어, 여기 생수 한 병을 450원 주고 샀습니다. 그리고 이 PC 한 대가 45만원이라고 칩시다. PC는 생수의 1,000배에 해당하는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생수 1,000병을 가져가면 PC 한 대와 바꿀 수 있습니다.

 

물은 다른 사물과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갖습니다. 그것은 PC도 마찬가지입니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눈 앞에 있는 생수 한 병의 가치가 PC 한 대의 가치보다 훨씬 크지만, 계량화된 화폐가치로 보면 PC 1,000분의 1에 불과합니다. 바로 이런 가치관에 사로잡히게 되면 각각의 사물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됩니다.

 

화폐경제하에서는 물물교환이 불편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유하려면 돈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원됩니다. 돈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가치는 삭제됩니다. 돈으로 교환될 수 있는 가치만이 유일한 가치로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계량화는 사물의 고유한 가치를 삭제하는 특징을 갖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계량화는 삶의 가치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지극히 왜곡된 현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수학이나 공학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수학이나 공학의 기초 위에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활용하는 모든 장치와 시설물들은 수학과 공학의 덕택입니다. 나는 수학적 사고야말로 이성적 활동의 가장 아름다운 영역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사의 모든 문제를 계량화 또는 수학화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소금을 염소와 나트륨으로 분해해서 그 본질을 이해했다 하더라도, 소금이 인류에게 주는 은유와 상징,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 주는 가치는 계량화 또는 수학화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행동의 대부분은 이런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제 다시 계량적 인간관으로 돌아오죠.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로부터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1947~)의 경쟁전략론에 이르는 20세기 경영학의 흐름을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람을 감정을 가진 부품’, ‘생각하는 부품’,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된 부품’, ‘경쟁할 줄 아는 부품등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계량화의 맹점을 계량화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인간관은 우리에게 심대한 폐해를 남겨놓았습니다. 가치판단의 유일한 기준은 이윤을 남기는 데 필요한 효율성과 생산성이 되었고, 그 기준을 채우기 위해 당근과 채찍에 의해 통제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작용하는 이데올로기는 바로 실증주의 또는 실용주의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재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뢰와 우정, 사랑과 몰입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래서 측정하기 어려운 항목들은 고려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재무제표에 이윤을 확대하는 항목들만 중시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자본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조직은 자본을 위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숭고한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