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직 이야기

인간이란 무엇인가(6)_인간의 실존성

지난 이야기

          인간이란 무엇인가(1)_인간을 보는 눈
          인간이란 무엇인가(2)_경영학의 인간관 문제
          인간이란 무엇인가(3)_이데올로기의 문제
          인간이란 무엇인가(4)_이데올로기와 이성적 판단능력
          인간이란 무엇인가(5)_존재와 실존


실존은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해 생명을 불어 넣습니다. 나는 실존을 그렇게 이해합니다. 만약 내가 이 강의를 하면서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모두 머리에 떠올리면서 강의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내 수업에 들어온 학생일반일 뿐입니다. 과외학원에서 시험 잘 보려고 수강하는 학생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수강생 개개인에게 내 영혼의 힘을 불어넣어 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그냥 인간일반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의 실존적 관계가 아니라, ‘그것의 대상적 관계일 뿐입니다. 클래스의 사이즈에 관계없이 그렇습니다. 물론 사이즈가 크면 더 불리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10명 내외의 클래스가 제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수강생 개개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영혼을 돌볼 수 있게 되니까요.

 

좀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펜이 있습니다. 이 펜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아니, 좀더 심오하게 펜의 존재목적은 뭔가요? 글씨를 쓰는데 있습니다. 만약 망가져서 더 이상 글씨가 써지지 않는다면 그 펜의 존재는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우리는 그 펜을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별로 비싸지도 않기 때문에 다른 것을 사서 쓰면 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요? 인간의 본질은 뭔가요? 인간의 존재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소크라테스 이후 수많은 철학자들이 사유해 왔지만, 결국은 인간의 본질, 즉 그 속성과 존재목적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펜처럼 무엇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위한 존재입니다. 인간에게만 유독 다른 사물과는 차별화되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철학자들은 일상적인 체험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의미들의 총체가 인간의 본질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나의 삶의 일상적 의미가 인간일반의 본질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하면, 내 얼굴에 난 뾰루지가 이라크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병사들보다 더 신경 쓰인다는 말입니다. 뾰루지는 지금 삶의 일상적 의미로 연결되지만, 병사들의 죽음은 그냥 나의 삶과 상관없는 인간일반들의 사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뾰루지보다 더 병사들의 안전을 생각하면서 미국의 전쟁유발 원인을 찾아보고 평화를 위해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이 어떤 것이냐보다는 일상의 삶에서 접하는 정보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가 다시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하는 인간의 모든 상황을 실존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실존은 영혼의 능력이 발휘되는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보편적 경험과 일치합니다. 성경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옵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것은 법률로 정해놓지 않더라도 마땅한 인륜적 지식이자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 중의 고급관료와 지식인들은 곤경에 처한 동족을 모른 체하고 지나갔지만, 그들이 천하게 여기던 사마리아인은 오히려 그 유대인을 데려다 극진히 간호했다는 얘기입니다. 유대인이든 누구든 인간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한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이처럼 본질에 대한 죽은 지식이 아니라 본질에 대한 살아있는 실천을 감행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영혼의 능력이며, 이렇게 영혼의 능력이 발휘되는 현상을 나는 실존적 상황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됩니다. (장 폴 사르트르, 박정태 옮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이학사 2008. 이 책은 사르트르가 1945년 파리에서 강연한 내용을 텍스트로 만든 것이라서 아주 얇은 문고본입니다. 천천히 읽어내려 가면서 사유의 깊이를 음미하면 오늘날에도 동일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랄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대변했던 일련의 철학적 사조를 실존주의 철학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앞서 언급한 키에르케고르였고, 독일어 권에서는 니체, 하이데거, 카프카와 같은 사람들이, 불어 권에서는 사르트르, 카뮈 같은 사람들이 실존주의 철학적 사조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들이 고민했던 문제의 공통점은 그 당시에 본말을 전도시키는 지배적 관념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실존의 문제와 그 성찰은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나는 철학사조가 아니라, 인류에게 끊임없이 창조적 삶을 영위하도록 용기를 불어 넣은 사상적 기반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실존적 상황입니다. 인간을 실제로 존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있어서 실존적 상황을 가능케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나는 그것을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영혼의 개념에 대해서는 이정우 교수의 『개념-뿌리들 02(철학아카데미 2004)를 참조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영혼이라는 말보다는 마음 또는 의식 또는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실존을 가능케 하는 영혼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줍니다. 영혼은 인간을 살아 숨쉬게 만듭니다. 영혼은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 넣습니다. 영혼은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사물의 간격에 창조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인간은 그러므로 영혼이 부여한 풍부한 의미로 외부세계와 연결되어(connected)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실존적 상황입니다.

 

그래서 나는 영혼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고, 인간의 본질과 존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은 없다고 생각해서, 인간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립니다.

 

인간이란 영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실존적 존재다.”

  

여기서 영혼의 능력이란 자기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에너지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영혼의 능력은 그러한 잠재력을 찾아내어 의미 있게 활용하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영혼은 자기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미래를 향하여 성장하도록 추동합니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여러 해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의 젊은 병사들 수천 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라크에서는 수만 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시는 미국의 병사들과 이라크 국민들을 생명을 불어 넣어야 하는 실존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그 일파들의 탐욕을 위해 그냥 인간일반의 무리들이라고 간주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명분도 없는 전쟁을 치르면서 수많은 사람이 처참하게 살육되도록 만들었던 겁니다. 만약 부시에게 미국시민 개개인을 영혼이 있는 실존적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미국에 아무런 위협도 없었던 이라크와 전쟁을 치르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관료들은 영혼이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권력에 따라 줄을 대는 모습을 빙자한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국민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생각해 보지 않고 시키는 대로 그냥 처리한다는 것을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정치지도자들은 관료체계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관료들을 영혼이 없는 로보트가 아니라 실존적 존재로 거듭나게 해 줘야 합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