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이야기

왜 책을 읽는가? 왜 케이스 스터디인가?

2015-05-09_이노우에 다쓰히코, 왜 케이스 스터디인가, 어크로스 2015

 

1. 나는 왜 책을 읽는가?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 독서를 취미로 삼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만 보는 편이다. 그래서 책을 잡으면 몇 시간 만에 장편소설 한권을 다 읽어버리는 사람들을 무척 부러워한다.

 

내가 책을 읽는 경우는 두 가지 상황에 처했을 때다. 하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 즉 이게 왜 이럴까, 하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의문이 강렬할수록 책에 매달린다. 다른 하나는 나의 의견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할 때 책을 읽게 된다. 둘 다 내 의문이나 의견에 답해줄 수 있는 책을 찾아 읽는다는 얘기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은 이유는 이것저것 의문이 많았기 때문이다. 경영학 중에서도 인사조직론이 내 전문분야지만, 신학이나 철학에서부터 문학이나 심리학을 거쳐 심지어 물리학까지... 물론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 읽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독서란, 내가 고민하는 문제들을 선각자들이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알아내는 행위다. 책을 통해 해결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의문만 더욱 증폭되기도 한다. 그래서 점점 더 책에 매달리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품의제도에 의한 의사결정 같은 경우가 그렇다. 우리나라는 서유럽과 달리 의사결정메커니즘이 품의제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서유럽의 모든 의사결정은 품의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직무담당자의 자기책임 하에 결정되는 것이 원칙이며, 그 결정이 여러 분야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에는 이해관계자들의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품의제도는 우리나라에 고유한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일제 식민시대의 잔재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요즘은 우리 고유한 의사결정방식이었다가 일본으로 전래되어 에도시대(도쿠가와 막부시대, 1603~1867)에 일본식으로 정교하게 정착되었다가 일제식민시대에 와서 일본식 품의서를 작성하여 결재를 받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에 다시 유턴한 것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내가 가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읽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도대체 우리나라 행정관청뿐만 아니라 공사기업들의 의사결정메커니즘이 품의제도에 의존하고 있는 연유가 무엇인지, 파헤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을 품은 것은, 내가 1986년 처음으로 서독연방은행에 연수를 갔을 때부터였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서독연방은행 직원들의 의사결정과정은 한국은행의 것과 사뭇 달랐기 때문에 신기하기도 했고, 매우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연수를 마치고 한국은행에 돌아와서 품의제도의 유래를 알아내고 싶었다. 공적인 국사연구기관과 국사학자들에게 알아보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학자가 없었다. 그 사정은 요즘도 마찬가지다. 일본자료는 꽤 많았는데, 그 원류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아무튼 내 독서방식의 특징은 독서를 위해서 책을 읽는 경우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 얘기는 주제가 아니므로 나중에 자세히 하기로 하고...

 

2. 최근에 읽은 책 한 권을 소개해야겠다.


이노우에 다쓰히코왜 케이스 스터디인가어크로스 2015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은 꼬박꼬박 읽는 편이다. 보내준 성의 때문이기도 하고, 내 취향을 대개 짐작하고 책을 보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 지인이 보내준 책도 있는데, 성의를 생각해서 읽기 시작하지만, 중도에 재미가 없으면 그만 손을 놓고 만다. 재미도 관심사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끝까지 다 읽었다. 경영과 경영학의 차이를 잘 정리해 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읽는 습관이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지식이나 교훈이 되는 곳에는 대개 이렇게 색인표지를 해둔다.


 

사례연구의 관점에서, 학문과 현실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하고 있다. 경영학은 경영현상의 사실과 진실을 엮어 이상(理想)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통계학적 보편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경영은 인간의 정신적 에너지와 그 정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엮어서 효용성(utility)의 최대화를 추구한다. 그런 목표달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활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경영과 경영학 사이에는 큰 갭이 있기 마련이다. 그 갭을 조금 줄여주는 것이 바로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

 

와세다 대학의 이노우에 다쓰히코 교수가 쓴 책이다. 케이스 스터디에도 두 가지가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주로 실리는 서사형(narrative style) 사례가 있는가하면, 미국경영학회가 발행하는 미국경영학회지(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AMJ)에 실리는 엄격한 학술적 검증을 거치는 사례들도 있다. 이 책에는 AMJ에 최우수논문상을 받은 5개의 논문을 소개하면서 사례연구들이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의식들을 어떻게 해결해주고 있는지 밝히고 있다.

 

제목으로만 봐서는 많이 팔릴 것 같지 않은 책인데, 경영학과 경영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학자들은 연구에, 경영자들은 경영실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경영컨설턴트들뿐만 아니라 직장인들에게도 경영에 관한 통찰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그동안 몇 권의 책을 출간해본 저자로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맘에 쏙 들게 편집하여 장정한 책을 만나보질 못했다. 저자가 아무리 의견을 내도 출판사 편집자들은 고집을 부린다. 내가 양보할 수밖에 없는데, 막상 책이 나온 후에는 편집, 디자인, 인쇄, 장정 등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늘 어딘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내용을 떠나서 편집에서 장정까지 완전히 내 스타일이다. 그래서 더 맘에 든다. 작은 출판사지만, 건투를 빈다....^^